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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시대의 전염병과 재해 (30)

기사승인 2020.10.05  1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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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년 5월 13일에 현종은 창덕궁 희정당에 나아가 대신들과 비변사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좌의정 허적이 아뢰었다.

"올해에 죽은 사람을 각 도에서 대부분 사실대로 아뢰지 않았으니, 전하께서 사람들이 장차 다 죽게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시겠습니까."

현종이 말하였다.

"도성 안도 두루 알지 못하는데, 더구나 외방은 어떻겠는가?" 

이어서 허적이 아뢰었다.

"경기의 보리가 처음에는 무성하게 되는 듯하다가 누렇게 말라 죽는 병이 들어 성숙하기를 바라기 어렵습니다. 지금 군신 상하가 다시금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방책이 없습니다. 예로부터 국가가 망하는 것은 혹 말을 달려 사냥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치하며 놀고 즐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신은 전하께서 결코 이러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다만 생각건대, 임금의 한마음은 하늘과 한가지가 되어야 하는데, 전하께서는 강건(剛健)한 덕이 부족하여 분발하고 가다듬어 과단성을 발휘하신 적이 없고, 또 대간의 계사가 본디 반드시 모두 옳은 말인 것은 아니나, 따를 만한 말이 있더라도 번번이 윤허하지 않는다고 비답하시니, 이것이 또한 신들이 답답하게 여겨 온 것입니다.

이제부터 전하께서는 늘 스스로 책려하시되 ‘우리 조종께서 부탁하신 나라가 나에게 달려 있는데 지금 백성이 다 죽으면 나라를 어떻게 보존하겠는가.’ 하시어 한결같이 근심하고 위태롭게 생각하기를 마치 난리 가운데에 있는 듯이 하신다면 위태로움을 바꾸어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지금이 바로 쉽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이어서 좌참찬 민정중이 아뢰었다.

"한성 참군(漢城 參軍) 정수선은 진휼청 낭청으로서 마음을 다하여 직무를 수행하였는데, 전염병에 걸려 죽었으니, 매우 불쌍합니다. 낮은 관직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감히 초기(草記)로 우러러 진달하지 못합니다."

이러자 현종은 정수선에게 장례 물품을 지급하라고 명하였다.
(현종개수실록 1671년 5월 13일)

5월 13일에 현종은 삼남(三南)의 감사·수령은 모두 가을 곡식이 익을 때까지 바꾸지 말라고 명하였다.

좌의정 허적이,

"각도의 수령은, 이미 보릿가을이 지났고 처음에는 부지런히 하지만 나중에는 게을러지는 것이 본디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합니다. 또 잉임(仍任)시키는 것은 마땅하지 않을 듯합니다. 차례로 차출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상이 삼남은 더욱 심하게 재해를 입었으므로 교체하면 폐단이 있다고 하여 특별히 이 명을 내렸다.
(현종개수실록 1671년 5월 13일)

이 당시에 조정은 각도의 굶주린 백성에게 진휼하는 일을 그만두었는데, 보릿가을 철이 되었고 또 안팎의 저축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서울의 세 군데 구휼소의 굶주린 백성이 모두 32,040여 명이었다. 서울 백성 19,570여 명을 제외하고, 파하여 본토로 돌아가는 외방의 굶주린 백성에게 각자의 거리를 셈하여 돌아갈때에 먹을 양식을 차등있게 나누어 주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더욱 심한 자에게는 15일분의 죽거리를 주었다. 병에 전염된 자에게는 각각 양식을 주고 활인서(活人署)를 시켜 치료하게 하고, 의지할 데 없는 어린애들에게는 따로 양식거리를 지급하되 진휼소를 설치하였을 때의 감독관에게 주어 그 친척을 찾게 하고 만약 데려다 기를 사람이 있으면 조치해 주도록 하게 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외방에는 혹 보리가 익지 않아서 기한이 지나도록 진휼하는 장소를 설치한 곳이 있고 서울에는 진휼하는 장소를 설치한 곳이 세 군데나 되고 또 중신(重臣)을 가려서 감독하게 하였으니 지극하다 하겠다. 그러나 바야흐로 진구를 한창 하고 있을 때에도 죽는 자가 잇따랐을 뿐이 아니었고, 더구나 보리가 크게 흉년이 들었으므로 반드시 죽게 될 상황을 눈으로 보았을텐데, 또 죽을 쑤어 구휼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이는 비록 국가의 재정이 다 비었기 때문이겠지만, 각 아문에 저축한 것으로 말하면 남은 것이 있으니, 묘당의 신하로 하여금 지극한 정성으로 처리하게 하였다면 또한 죽는 것을 보고만 있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석 달 동안 어렵게 부지런히 구제한 끝이라 다시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먹여 주기를 바라는 백성으로 하여금 하루아침에 구덩이에 빠지게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나라의 운수와 관계된 것인가. 아, 비통하다!
(현종개수실록 1671년 5월 15일)

김세곤 segon53 @hanmail.net

<저작권자 © 호남미래포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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