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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시대의 전염병과 재해 (24)

기사승인 2020.08.28  12: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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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년 3월의 조선은 ‘참혹’ 그것이었다.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온 나라가 지옥이었다. 1671년 3월20일에 조정은 평양교수의 직책을 임시로 폐지하였다. 흉년때문이었다. (현종개수실록 1671년 3월 20일)

3월 21일에 충청 감사 이홍연이 자식을 삶아 먹은 사노비 순례(順禮)에 관해 보고하였다. (현종개수실록 1671년 3월 21일)

"연산(連山)에 사는 사노비 순례(順禮)가 깊은 골짜기 속에서 살면서 그의 다섯 살 된 딸과 세 살 된 아들을 죽여서 먹었는데, 같은 마을 사람이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사실 여부를 물었더니 ‘아들과 딸이 병 때문에 죽었는데, 내가 큰 병을 앓고 굶주리던 중에 삶아 먹었으나 자식을 죽여서 먹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사노비 순례는 보기에 흉측하고 참혹하여 얼굴 생김새나 살갗·머리털이 조금도 사람 모양이 없고 미친 귀신 같은 꼴이었다니 반드시 실성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성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예전에 없었던 일이고 범죄가 매우 흉악하므로 가두어 놓았습니다.”


이러자 승정원이 아뢰었다.

"이번에 연산 사람이 아들과 딸을 삶아 먹은 변고는 매우 놀랍고 참혹합니다. 자애로운 성품은 천부적으로 다 같이 타고나는 것인데 그가 흉측하고 완고하더라도 어찌 지각이 없었겠습니까. 심한 굶주림에 부대껴서 이토록 악한 짓을 하였으니, 이것은 교화가 크게 무너진 데에 말미암은 것이기는 하나 실제로는 진휼의 정사가 허술해서 그런 것입니다. 감사는 먼저 수령의 죄를 거론해야 할 것인데 면의 책임자들만 다스리고 말았으니 놀라운 일입니다. 감사와 수령을 모두 무겁게 추고하소서.

이어서 생각건대, 국가에서 구휼정책에 대한 대책을 여러모로 추진하고 있으나 관청의 창고는 텅텅 비고 관리는 지쳐서, 굶주려 낯빛이 누런 백성들이 붕어처럼 입만 벌리고 갈망하다가 장차 다 죽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봄 가뭄의 조짐이 이미 나타나 밀 보리가 점점 말라가고 있어 참화가 눈앞에 닥쳤습니다. 서울 안의 구휼소에 더 주의를 시키고 각도의 감사에게 글을 지어 보내 진휼 행정에 미진함이 없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에 현종이 답하였다.

"아침에 장계를 보고 놀랍고 슬퍼서 차마 말할 수도 없었으나 말이 명백하지 않아서 상세히 알기 어려웠다. 형조에 내려보낸 것은 뜻이 있었는데 범연히 추고하기를 청하였으니 착실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형조의 뜻이 이러하니 우선 추고하라. 마지막 부분에 경계한 뜻은 참으로 절실하므로 매우 감탄하였다. 내가 유념하겠다."

아무리 배고프다고 자식을 삶아 먹다니. 참으로 참혹하다.

3월 23일에는 전라감사 오시수가 굶주림과 전염병에 대해 치계하였다.

"전후 굶주린 백성을 합하여 셈하면 172,200여 명입니다. 3월부터 죽을 먹는 가운데에서 농민을 뽑아 양식을 나누어주기 시작하였습니다. 떠돌며 빌어먹는 자는 읍에 있는 구휼소에 가서 죽을 먹게 하였습니다만, 너무나 얼고 굶주려서 얼굴 가득히 누렇게 뜬 무리는 날씨가 따뜻해진 뒤에 죽은 자가 더욱 많습니다.

토착민은 아침저녁으로 죽을 먹는 외에 채소도 아울러 먹으므로 다들 소생하는 기운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금을 굽거나 고기잡이하는 가구가 생업을 그만두고 가족을 데리고 다들 구휼소로 갔으니 어염세(魚鹽稅)를 크게 감면하는 조치가 없으면 앞날에 근심이 매우 클 것입니다.

포구나 섬에 사는 백성들은 대체로 관아와 멀리 떨어져 있어 집을 못 잊어서 죽을 먹으러 가지 않기 때문에 온 가족이 죽게 되는 경우가 육지 백성보다 휠씬 많습니다. 고을의 중심지와 큰 도회지에는 떠돌며 빌어먹는 자가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으므로 쓰러져 죽은 시체가 매우 많습니다.

흉년의 전염병은 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 모든 마을에 전염이 안 된 곳이 하나도 없이, 불처럼 더욱 번지고 있으므로 편히 쉬게 될 날이 언제 있을지 막막합니다. 죽을 장만하는 것을 감독하는 자 중에 전염되어 앓는 자를 이루 다 셀 수 없고 각 고을의 수령과 아속(衙屬)으로서 전염되어 앓는 자도 많습니다.

혹 관아 사람 전부가 전염되어 앓으면 그 관아의 노비가 관속(官屬)의 일을 대행하기도 합니다. 병을 앓는 백성을 위해 장막을 따로 설치하여 전염을 예방하고 있습니다마는, 5-6일분의 식량을 나누어 주면 한꺼번에 죄다 먹고는 지팡이를 짚고 무릎으로 기어들어와 입을 벌리고 먹여 주기를 바라는데, 쫓아도 안 되고 타일러도 안 됩니다. 이런 비참한 꼴은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현종개수실록 1671년 3월 23일)

김세곤 segon53 @hanmail.net

<저작권자 © 호남미래포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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