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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시대의 전염병과 재해 (19)

기사승인 2020.07.20  10:5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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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년 2월 3일의 현종실록에는 “제주에서 폭설로 91명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주에 지난 12월 2일 큰 바람과 많은 눈이 한꺼번에 몰아쳐서 쌓인 눈이 1장(丈)이나 되었다. 산에 올라가 나무 열매를 줍던 기민(飢民)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길이 막혀 얼어 죽은 자가 91명이었다. 또한 기근 중에 전염병이 많이 발생하여 죽은 자가 또한 많았다.

2월 4일에 비변사가 제주 구휼에 관해 아뢰었다.

"제주의 세 고을의 기민을 구제하는 일이 하루가 급한데, 상세히 들으니, 제주도의 형세는 진구할 곡물이 세전(歲前)에 바닥이 나게 생겼는데 곡식을 운송할 배는 바람이 잔잔해지기를 기다리며 석 달이나 되도록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전라도는 섬에서 배가 오기를 기다리며 아직도 수송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수 만명 백성들의 목숨이 바야흐로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만약 각 고을의 곡물이 다 도착하기를 기다려서 배를 출발시킨다면 필시 너무 늦어지게 될 것입니다. 통신(統臣) 및 두 수사(水使)로 하여금 곡식을 옮겨 싣는 대로 바로바로 들어가서 죽음에 임박한 백성들의 목숨을 구제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이러자 임금이 윤허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만약 지체하게 되면 해당 수사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뜻을 분부하도록 하라."

2월 4일에 대사헌 이정기, 장령 김상, 지평 윤계가 곡식을 빼돌린 안후창 등에게 죄주기를 청하였다.

"양산군수 안후창은 전에 보령현감으로 있을 때, 김해·영암의 세금을 운반하는 배가 본읍의 포구에 와서 물이 얕아 기울어진 일이 있었는데, 원래 침몰한 것이 아닌데도 이에 바다 가운데에서 뒤집혔다고 감사에게 허위 보고하였습니다. 감사가 이를 조사하여 실상을 알아낸 다음 보고하여 죄주기를 청하였는데, 하옥된 뒤에 교묘하게 말을 꾸며서 단지 유배만 당하였습니다. 세금을 운반하는 배가 처음 닿았을때에 뱃사람을 공갈 협박하여 달아나 흩어지게 하고는 간사한 서리(胥吏)와 짜고 몰래 1천여 석의 나라 곡식을 훔쳤는데 끝내 둔 곳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보령 백성에게 해마다 거두고 있지만 아직도 그 수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으므로 온 고을 사람들이 그의 살을 씹어 먹으려 하니, 지나간 일이라 하여 그냥 둘 수 없습니다. 그를 잡아다 추문하고, 또한 감사를 시켜 엄히 사실을 조사하여 율문대로 처단하게 하소서.

평안병사 성익은 전에 황해병사로 있을 때, 정방산성에서 오래 양성한 나무를 성첩(城堞)에 바싹 붙어 있다고 핑계 대고 마음대로 베어 팔아서 이익을 꾀하였습니다. 그 당시 산성별장(別將)은 처벌받았으나 성익은 홀로 면하였습니다. 성익은 평안 병사에 제수된 뒤에는, 의정부에서 분부하여 벽돌을 많이 장만하여 불시의 수요에 대비하게 하였는데, 성익은 이를 빙자하여 재력(財力)을 모아 사사로이 기와를 굽고 은화를 많이 받아서 죄다 사사로운 용도에 돌려쓰고 벽돌에 있어서는 약간으로 책임만 메꾸었으니, 그 간사하고 방자한 것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습니다. 잡아다 추문하여 죄를 정하소서.”

전형적인 부패 사례이다. 더구나 백성들은 기근에 죽어가는 데 관리들은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현종은 모두 따르지 않았다. 현종의 처사는 이해되지 않는다. 감싼다고 될 일인가?

2월 4일에 경상감사 민시중이 경상좌도의 바닷가 지역에 종사하는 군졸들이 죽을 걱정이 조석에 닥쳤다 하여, 월과미(月課米 : 지방에서 중앙에 매월 정례적으로 세미 稅米)를 덜어내 나누어 주어 진구하게 하기를 청하였다. 지방 군졸들조차 굶어 죽게 생겼으니 참으로 심각하다. 이러자 현종은 비변사에 지시하여 월과미 5백 석을 덜어내어 영하(營下)와 열 군데 진(鎭)에 고루 나누어 주어 죽을 쑤어 구제하게 하였다.

2월 7일에 대사헌 이정기, 지평 윤계가 상차하여 진휼할 방책을 아뢰었다. 전세(田稅)를 감면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사를 보내어 진휼의 정사를 살피고, 마른 양식을 헤아려 지급하여 농사를 폐지하지 않게 하기를 청하였다.

현종이 답하였다.

"아, 지난해의 흉년은 실로 전에 없던 것이었다. 불쌍한 우리 백성을 장차 어찌한단 말인가. 여기까지 말하다 보면 절로 기가 막히고 가슴이 아프다. 이 차자의 사연을 보건대 나라를 근심하는 뜻이 절실하므로 내가 매우 감탄하였다. 의정부와 의논하여 처리하겠다."

김세곤 segon53 @hanmail.net

<저작권자 © 호남미래포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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