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현종 시대의 전염병과 재해 (11)

기사승인 2020.05.25  10:31:04

공유
default_news_ad2

1670년 10월25일에 사간원 사간 심유가 호남 경시관(湖南京試官)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호남의 실상을 아뢰었다(현종개수실록 1670년 10월 25일)

"신이 시험을 감독할 때에 많은 선비들이 일제히 ‘국가에서 비록 백성들의 일에 전념하여 여러 신역들을 면제시켰으나 굶어 죽거나 흩어져 떠돌 상황이 겨울 이전에 박두하였다. 대동수미(大同收米)와 제반 군포(軍布)와 각종 환곡 등을 완전히 면제시키지 않으면 빈사 상태에 있는 백성들이 세금을 어디서 마련하겠는가?’라고 말하였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호남 각 고을 전체의 재해실태에 대해서는 전라감사가 필시 일일이 보고하였을 것이고 의정부에서도 필시 품의하여 재결하였겠습니다만, 신이 도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또 오가는 길에서 듣고 본 소견을 몽매함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쓸데없는 비용을 줄여 실질적인 혜택을 베풀기에 힘쓰고 각종 신역을 감면하여 특별히 백성들의 뜻을 따르소서."


현종은 신역을 감면하는 등의 일을 의정부와 의논하여 처리하겠다고 답하였다. 그 뒤에 심유는 아뢴 것이 채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물러났는데, 조정에서는 끝내 세금을 감면하지 않았다.

11월1일에 전라감사 오시수가 치계하여 구황의 방책을 조목조목 아뢰었다. 비변사가 회계하여 이 중 아홉 가지 사항을 시행할 것을 청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격포(格浦)항 등에서 받는 곡식에 모곡(耗穀 환곡을 받을 때, 곡식을 쌓아 둘 동안 축이 날 것을 미리 셈하여 한 섬에 몇 되씩 덧붙여 받던 곡식)을 감면하도록 특별히 명하여서 작으나마 은혜를 베풀 것,

2. 산성에서 받는 곡식은 그 성 아래의 창고에서 거두게 하고, 각종 곡식으로 대신 받는 것을 허락할 것,

3. 각 관사의 노비에게 면천을 허가하여 받은 돈으로 진휼의 비용에 보태 쓸 것,

4. 본도의 전결을 중중(中中) 이하로부터 하상(下上)까지 3등급은 모두 하중(下中)에다 넣고, 하중의 전(田)을 하하(下下)에다 넣는 것은 허락하지 말 것,

5. 속오군(束伍軍 지방의 군사조직)의 각종 병기는 관비(官備)나 자비(自備)를 막론하고 관가에서 거두어 모아 내년 가을에 다시 지급하게 하고, 전선(戰船)과 군기(軍器)도 소속 본관 및 각 진포(鎭浦)에 옮길 수 있도록 허락할 것,

6. 진휼할 때 필요한 장을 담글 콩은 통영(統營)과 각 아문의 회부(會付) 가운데서 3천 섬을 지급할 수 있게 허락할 것,

7. 한해가 든 밭(旱田)의 목면(木綿) 중 특히 부실한 곳은 세금 면제를 허락할 것,

8. 호조 소관의 염세 목면(鹽稅木)을 본영의 은화와 바꾸도록 허락하여 진휼 자금에 보태 쓰게 할 것,

9. 사망한 군사는 내년 가을까지 대신 채우지 않은 기간 동안 그 번포(番布 번을 서는 대신에 바치는 베)를 감할 것.

이에 현종은 모두 허락하였다.

이전에 허적이 오시수의 장계를 임금 앞에서 조목조목 아뢸 때 노비의 속량에 관한 내용(3항)에 이르자 현종이 신하들에게 두루 물었다.

김좌명이 아뢰었다.

"1백 구를 속량하면 겨우 5천 섬을 얻으니 소득이 많지 않은데, 길을 열면 뒤에 매우 곤란해질 것이니, 신은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이윽고 홍중보가 아뢰었다.

"이러한 길이 일단 열리게 되면 서울의 사람들이 싼 값으로 관비(官婢)를 속량하려 하여 반드시 어지러워질 것이니 절대로 가볍게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자 허적이 아뢰었다.

"진실로 홍중보의 말과 같습니다. 지금은 외방 각사의 노비만 허락을 하되, 영남에서도 일찍 이러한 청이 있었으니 함께 허락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이러자 현종이 따랐다. 현종은 다른 도도 아울러 허락하라고 명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오시수가 치계한 많은 조목들은 모두 10월 초에 직접 아뢴 것이다. 민생이 구렁에 떨어지고 있어 진휼하는 정책은 의당 빨리 강구해야 하는데, 한 번 보고한 뒤에는 덮어두고 세월만 보냈다.

이 때문에 일이 정해지는 것이 없고 명령은 대부분 때를 놓치니 의정부의 신료들이 어찌 그 책임을 떠넘길 수 있겠는가.
(현종개수실록 1670년 11월 1일)

재난 구호의 기본은 타이밍이다. 지금은 어떤가?

김세곤 segon53 @hanmail.net

<저작권자 © 호남미래포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