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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혜장 선사의 만남 (2)

기사승인 2019.10.23  11: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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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에 혜장 선사가 입적하자 다산 정약용의 슬픔은 컸다. 그 슬픔은 1811년 겨울, 흑산도에 유배중인 둘째 형 정약전(1758∼1816)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난다. 이 편지는 공재 윤두서, 성호사설, 아방강역고 등 여러 내용인데 말미에 ‘아암(兒庵)이란 승려에 대하여’ 적었다.

“대둔사에 어떤 승려가 있었는데 나이 마흔에 죽었습니다. 이름은 혜장 호는 연파, 별호는 아암, 자는 무진이라 하는 데 본래 김씨로 해남의 미천한 집안사람이었습니다.(중략) 그는 불법을 독실하게 믿으면서도 주역의 원리를 들을 때부터는 몸을 그르쳤음을 스스로 후회하여 실의한 듯 즐거워하지 않다가 6,7년 만에 술병으로 배가 불러 죽었습니다.

지난해 내게 보내 준 시에 ‘ 백수(柏樹)공부를 누가 힘써 할 것인가(柏樹工夫誰得力) /연화세계는 이름만 있는 것이지(蓮花世界但聞名) /미친 노래를 근심 속에 부르며(狂歌每向愁中發) /술만 취하면 맑은 눈물이 흐르네(淸淚多因醉後零)’라고 했는데 아는 자들은 슬퍼했습니다. 그가 죽을 무렵에 여러 번 혼잣말로 무단히, 무단히(방언으로 ‘부질없이’)라고 했답니다.(후략)”

여기서 백수(柏樹)공부는 ‘화두를 구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공부’이다. 어떤 승려가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달마대사가 왜 서쪽에서 왔는가?”라고 물으니, 조주는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다(庭前柏樹)”라고 말했다 한다. 이는 잣나무까지도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이라는 뜻이다.

한편 1812년 겨울에 혜장의 두 제자가 그의 행장(行狀)을 가지고 다산을 찾아왔다. “우리 스승님의 탑(塔)을 세워야 하는데, 선생께서 그 명(銘)을 지어주십시오”하므로, 다산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지은 글이 “아암장공탑명(兒菴藏公塔銘)”이다.

다산은 이 비문에서 혜장의 탄생과 불교에의 귀의, 혜장과 첫 만남, 보은산방과 다산초당에서의 교류, 아암이란 호에 대한 내역, 아암이 죽은 해에 쓴 자작시를 소개하고 명(銘)으로 끝맺는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빛나는 우담발화(優曇鉢華) 燁燁優鉢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시들었네(朝華夕衰)
펄펄 나는 금시조(翩翩金翅)
잠깐 앉았다가 곧 날아갔네(載止載騫).


우담발화(優曇鉢華)는 3천 년 만에 한 번 꽃이 핀다는 무화과의 일종으로 아주 드물게 있는 일을 비유하는데, 여기서는 비범한 인물 혜장이 너무 일찍 세상을 뜬 것을 애도하는 표현이다. 금시조는 인도의 전설에 나오는 용을 잡아먹는다는 새이다.

슬프다, 이 아름답고 깨끗함이여(哀玆都潔)
지은 글 있어도 전할 사람 없어라(有書無傳)
그대와 더불어 함께 갔다면(與爾偕征)
오묘한 진리, 깊은 이치도 열어젖힐 수 있었으리(手啓玄鍵) .


조용한 밤에 낚시 거두니(靜夜收釣)
밝은 달이 배에 가득했네(明月滿船)
지난봄에 입을 다무니(殘春緘口)
산 속 동네가 너무 쓸쓸하도다(山林寂然).


이름 역시 나이든 아이였는데도(是名壽童)
하늘은 그 나이에 인색하였네(天嗇其年)
이름이야 스님인데 행실은 유자(儒者)이네(墨名儒行)
군자가 어여삐 여긴 바로세(君子攸憐).


<주역>·<논어> 등에 빠져 불교에 회의를 느낀 유학자 같은 승려 혜장 선사. 그가 너무 빨리 저 세상으로 간 것을 아쉬워하는 다산의 마음이 애잔하다.

한편 혜장선사의 ‘아암장공탑’은 해남군 대흥사 입구의 부도(浮屠) 밭에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부도 밭이 있는데, ‘아암장공탑’은 정문 입구의 청허당 서산대사와 조선 차(茶)의 중흥을 이끈 초의(草衣 1786∼1866) 대종사 탑 사이에 세워져 있다.

탑비는 ‘동방제십ooo대사’라고 적혀 있고, 비문 글씨는 너무 희미하다. 그렇지만 찬찬히 읽어 보면 ‘아암’이란 글자가 여러 번 나온다. 비의 왼쪽 맨 아래쪽엔 ‘정약용선(丁若鏞 撰)’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적혀 있다.

다산 정약용과 혜장선사를 다시 생각한다. 두 사람의 만남은 너무 아름답고 슬프다.
 

강진군 다산초당

 

 

김세곤 segon53 @hanmail.net

<저작권자 © 호남미래포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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