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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속의 세존 찾기, 백용성(白龍城)

기사승인 2017.01.02  09: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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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수원(水原). 법명(法名) 진종(辰鍾). 속명 상규(相奎). 용성은 법호(法號).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 번암면(蟠岩面)에서 출생하였다. 16세 때 해인사(海印寺)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한 후 전국의 명찰(名刹)을 돌면서 심신 연마에 힘썼다.

1911년 서울에서 대각사(大覺寺)를 창건하였고 1919년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이 일로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불교종단의 정화를 위하여 힘쓰고 대처승의 법통계승(法統繼承)을 인정하는 일본의 종교정책에 맹렬히 반대하였다. 한편 불교의 대중화운동을 촉진하기 위하여 한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저술에 진력하였으며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각교(大覺敎)를 창설하였다. 1922년 중국 연길에 대각교당(大覺敎堂)을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40년 2월 24일 나이 77세, 법랍 61세에 입적하였다.

저서로 《수심론(修心論)》이 있으며, 기독교의 불교비방을 비판한《귀원정종(歸源正宗)》, 《용성선사어록(龍城禪師語錄)》 등이 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두산백과)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기자 honamff@naver.com

<저작권자 © 호남미래포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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